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 (문단 편집) === 폭로 === 그러던 중 [[1966년]]에 공중보건국에서 [[성병]] 조사 임무를 맡고 있던 피터 벅스턴이 실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하자 [[내부고발|6년 후인 1972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신문기자 친구에게 제보하여]] 이 실험은 세상에 알려졌다. 결국 [[1973년]]에 실험은 중단되었고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지만 생체실험에 직접 참여했던 의사들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'''"그 사람들은 어차피 [[가난]]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사람들인데 그냥 죽을 바에야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죽는 게 낫지 않는가"'''라고 발언하여 공분을 샀다. [youtube(Wju0wD9mK3Y)] 결국 실험 생존자와 유족들은 정부에 소송을 걸어 총 9백만 달러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. 이후 이 생체실험에 대한 반성의 일환과 미국의 [[연구윤리]]에 대한 스탠다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[[벨몬트 보고서]]가 [[1979년]]에 나왔으며 [[1997년]] 5월 16일 [[빌 클린턴]] 대통령이 실험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공식 사과하였다. 클린턴 대통령은 터스키기 대학의 생명윤리연구 및 건강관리를 위한 국립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투자를 발표했다. [[파일:external/i2.media.daumcdn.net/20110901212037360.jpg]] 이 터스키기 실험을 주도한 게 바로 '''죽음의 천사'''로 악명을 떨친 미국 공중보건국의 '[[존 커틀러]](1915 - 2003)' 박사다. 1942년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국에 들어가 각종 생체실험의 대가로 승진을 거듭했고 1967년 [[피츠버그 대학교]]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생체실험을 계속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